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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스님이 입고 있는 가사에도 지위가 있다?

by 언덕에서 2012. 2. 4.

 

 

스님이 입고 있는 가사에도 지위가 있다?

 

 

 

스님의 가사

 

 

 가사(架裟)는 장삼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입는 스님의 법의(法衣)를 의미한다. 스님이 입고 있는 가사에도 지위가 있다. 종파와 법계에 따라 그 색과 형태에 엄격한 규정이 있는데, 가사는 범어인 ‘카사야(Kasaya)’에서 음을 딴 것으로, 인도에서는 사계절의 평상복으로 착용하였는데, 중국에 전래되면서 불교의식 및 법회 때 편삼 위에 걸치는 의식복으로 사용되었다. 우리 나라에는 삼국시대 중엽에 흑장삼과 붉은 가사가 전래되어, 전통적인 바지·저고리 위에 착용하게 되었다.  또,≪삼국유사≫의 원종흥법조에는 ‘피방포(被方袍)’라는 가사가 보이며, 자장이 계율을 확립하고 난 뒤부터 수행 및 법계의 차이에 따라서 다른 가사를 입게 되었다고 전한다.

 가사에서 천 조각 수가 많을수록 승가에서 높은 지위를 상징하는데 배경은 다음과 같다. “부처님 당시에는 가사를 ‘분소의(糞掃衣)’라고 불렀다고 한다. ‘똥이 묻어서 버린 천으로 만든 옷’이란 뜻”이다. 부처님 당시 인도의 승려들은 시신을 쌌던 천이나 버려진 천 조각을 기워 가사를 만들었다. 그래서 출가한 지 오래된 스님의 가사일수록 기운 천의 조각 수가 많았다. 현재 조계종에는 품계에 따라 7조 가사부터 25조 가사까지 있고, 몇 년 전 비구니 스님에게도 25조 가사를 허락하기로 했다.

 

성철 스님

 

 

 우리가 무심히 보기 쉬운‘가사’에도 이런 의미가 있다니 놀랍다. 그런데 가사의 색깔에는 더욱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녹아 있다. 조계종 승려의 가사는 ‘괴색(壞色)’인데‘원래 색에서 멀어진 색’이란 뜻이다. 옛 인도에선 똥이 묻거나, 시신을 쌌던 천 조각에 황토로 물을 들여 원래 색을 뺐다. 스님은 “불교 수행은 내가 가지는 상(相)을 다 없애는 것이다. 그래서 가사의 괴색에는 ‘무아(無我)’와 ‘무소유(無所有)’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했다.

 이에 반해 불교 태고종의 가사는 붉은 색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에 수행을 위해 온몸에 피를 흘린 일화가 있었다. 붉은 가사는 ‘부처님의 피’를 의미한다. 그처럼 피나는 수행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래서 인도에선 가사를 ‘적혈색의(赤血色衣, 붉은 핏빛의 옷)’라고도 불렀다.

 그렇게 관심을 두다 보니 불교뿐만 아니라 각 종교별 성직자 복장에는 해당 종교의 지향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래서 옷은 그들에게 ‘입을 수 있는 경전’이자,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단추 달린 거울’이기도 했다.

 

고 이태석 요한 신부님

 

 

 그럼 신부님들의 옷은 왜 검정색일까. 검정색은 ‘죽음’을 뜻한다.  <수단>이라 부르는 검정옷은 신부님들에겐 일종의 상복(喪服)이다. 사제는 그걸 입고서 자신의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검정 수단은 이 땅에서의 죽음, 세속에서의 죽음을 뜻한다. 더불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포기도 의미한다.

 천주교 사제 서품식에는 순명서약(바닥에 온몸을 엎드려 직무를 수락하는 서약)이 있다. 비로소 낳아준 부모와 세상과 인연을 끊게 되는 의식인데 이 부분에서는 참가자, 참석자 모두를 눈물을 흘리게 되는 숙연함이 있다.

 

 

 그러면 추기경의 수단은 붉고, 교황의 수단은 흰 이유는 뭘까.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붉은 색은 ‘순교자의 피’를, 흰 색은 ‘하느님의 대리자’를 나타낸다고 한다.

 

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

 

 

 그렇다면 로만 칼라의 앞이 트인 이유는 뭘까. 거기로 드러나는 흰 칼라의 네모난 모양은 ‘신부’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로만 칼라는 전통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사제가 교회에 온 생애를 봉헌하고 세속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의미와 정결을 지킨다는 의미다. “거기에는 ‘내 뜻대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게 하소서’라는 간절한 기도가 담겨 있다.

 

 

 반면 개신교는 성직자의 복장이 자유롭다. 설교 때 목사님들은 가운도 입고, 양복도 입는다. 또 티셔츠를 입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개신교는 미국 개신교의 영향이 강하고, 미국의 개신교는 청교도의 영향을 받았다. 청교도 전통에선 ‘사제’라는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간 매개 단계가 없다. 만인이 제사장’이란 입장 때문에 모든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일대일 관계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 강원룡 목사님

 

그래서 개신교의 목회자도 성도 중 한 사람일 뿐이어서 굳이 사제복이란 유니폼에 얽매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형식과 계급, 차별에 대한 타파가 개신교의 자유로운 복장에 담긴 의미일 것이다.

 

 

원불교 교무님들

 

 

 그러면 거리에서 한번씩 만나게 되는 원불교 교무님들이 입는 옷의 의미는 무엇일까? 원불교 교역자들이 평상시 입는 교복은 남자와 여자로 구분된다. 남자 교무는 양복에 개량 와이셔츠, 여자 교무는 백색 한복 저고리와 흑색 한복 치마를 착용한다. 원불교에서는 백색과 흑색은 민족정신을 계승하고, 검소한 생활과 질박을 나타냄을 상징한다.

 초기만 해도 원불교 여성 교무들의 저고리와 치마 복장은 ‘파격’이자 ‘진보’였다고. 긴 옷고름을 짧게 잘랐고, 머리도 땋아서 쪽지는 대신 짧게 말아서 올렸다. 일제시대만 해도 여성 교무의 복장은 ‘신여성의 첨단 패션’이었을 것이다. 원불교 신자들은 원불교가 그만큼 ‘생활화’와 ‘간결화’를 중시하기 때문”이었다. 원불교가 불상을 일원상(동그라미)으로, 기다란 가사를 목에 거는 간결한 ‘법락’으로 바꾼 데는 형식을 붙들지 말고 본질로 바로 들라는 원불교의 가르침 때문이다.

 원불교 초창기에 여성 교무의 복장과 머리 모양(낭자)은 당시 신여성을 원형으로 하고 있었다. 도리어 짧은 치마가 문제가 됐을 정도였다. 원불교의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가 당시부터 남녀평등을 내세운 진보적 성향이었고, 남자 교무들도 일찍이 상투를 자르고 시대의 흐름을 앞서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변화에 뒤처지게 되었다. 

 그래서 원불교 내부에서 여성 교무들의 쪽진 머리 모양이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고 특히 서구인들에게 후진적인 종교단체로 비친다는 이유로 ‘두발 자유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머리를 빡빡 밀고 희색 바지·저고리 위에 괴색 가사를 입은 스님의 모습 때문에 서구인의 시각에서는 불교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고 원시적인 종교단체로 비춰지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원기 100년(2015년)을 앞둔 원불교에서 정녀님의 머리 모양이 바뀔지에 관심이 모아진다.